비행기가 굉음을 일으키며 지면을 구르던 바퀴를 접었다. 비행기는 예정보다 조금 연착되어 느즈막한 오후에 출발했다. O는 몸이 하늘 위로 떠오르는 것을 체감하며 작은 창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응시했다. 지표면 부근을 데우는 빨간 노을이 참 근사했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한동안은 못 볼 풍경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이것저것 눈에 담고 싶었다. 대략 일주일 먼저 비행기에 올랐을 Q는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비행기의 앞코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상상했을 것이며 비행기 바퀴가 다시 펼쳐질 순간만을 고대했을 것이다. O는 창문에 둥글게 박힌 노을을 카메라에 담았다. Q가 들뜬 마음에 놓쳤을 순간들을 일단 모아보고 싶었다.

노을이 지고 기내에는 실내등이 들어왔다. 비행기는 오랜 시간동안 어두운 하늘을 날다가 간간히 구름을 통과했다. O는 기류 때문에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잠에서 깼다. 그는 환경에 이렇게까지 자신이 예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낯섦을 느꼈다. 그러다 담요를 고쳐 덮고 몸을 뒤척일 때면 불현듯 다시 Q가 떠올랐다. Q는 사람의 인기척 때문에 깰 만큼 얕은 잠을 자는 편이라고 했다. 불현듯 누군가가 자신의 어깨를 잡고 흔들 것처럼 몸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것이 Q가 자신의 나라를 떠난 이유였다.

 

이 나라에서는 잠을 잘 못 자겠어. 계속 깨어 있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Q는 바 테이블에서 유리잔을 닦고 있던 O에게 그렇게 말했다. Q는 O와 똑같은 시간대에 마감을 하면서도 한 번도 사담다운 사담을 나눈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O는 그 물음에 답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감각에 사로잡혔다. 그는 닦던 유리잔을 내려놓고 Q를 바라보았다. 다른 나라에 가보면 되죠. 그렇게 가볍게 대답한 것은 Q가 자신에게 어설픈 농담을 던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오랫동안이나 자리를 지켜왔던 Q가 쉽사리 제 보금자리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이기적인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O는 그때 Q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테이블에 비스듬하게 기댄 채 뭐라 중얼거렸던 것 같은데. O는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Q의 옆얼굴을 떠올리며 다시 짧은 잠에 빠졌다.

 

*

 

비행기 바퀴가 크게 덜컹거리며 땅에 발을 붙였다. O는 부스스한 머리를 몇 번 긁적이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Q가 가고 싶다던 나라에 도착해 있었다. 담요를 개고 가방을 챙기는 사람들로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O도 낯선 이국의 풍경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비행기에서 내렸다. O는 Q가 혼잣말처럼 던지곤 했던 희망사항들을 떠올렸다. Q는 그 이후로 떠날 것을 예고라도 하듯이 여태 하고 싶었던 것들을 종종 O에게 말하곤 했다.

 

그 나라는 서로 모르는 사람이 없대. 친분이 많이 쌓여서 막역한 사람들도 많고.

 

O는 그때, 여기에도 당신과 막역한 사람들은 많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다. Q는 혼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는 사람처럼 주변에 사람이 꼬이는 인물이었다. 바에서도 Q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고 허심탄회하게 고해성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쉬는 시간마다 심심치 않게 그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보면 그 기질이 단순히 직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듯했다. 그래서 O는 뜬금없이 Q가 그런 말들을 할 때마다 자신이 알던 직장 상사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직장에서의 모습만 보고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겠나 싶어 O는 괴리감과 수긍을 반복하곤 했다. 단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왜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지금은 그가 해준 말 빼고는 이 먼 이국의 땅에서 그를 찾을 방법이 없었다. O는 짐을 찾는 곳에 도착할 때까지 Q가 해준 이야기를 하나둘씩 되새겼다. 맑은 강이 흐르는 다리. 사람 수가 적은 한적한 레스토랑. 고양이들이 지나다니는 고요한 밤거리. 뭐 하나 구체적인 것이 없었지만 O는 그것들이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

 

조촐한 가방을 찾은 O는 공항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급하게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는 예상보다 훨씬 외진 곳에 있었다. 평소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지 않는 O였기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을 선호했지만, 교통편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택시 기사가 난감한 얼굴로 차 앞을 손가락으로 휘적거릴 때쯤 O는 어렴풋이 그 상황을 이해하고는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 기사는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길을 가리키며 최대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설명하는 듯했다. O는 대충 방향 정도만 익힌 다음 택시 기사에게 목례를 하고는 차를 떠나보냈다.

택시 기사가 가리킨 방향대로 걷다 보니 택시가 왜 이곳까지 들어오지 못했는지 대충 짐작이 됐다. 시가지에 규칙성이 없고 길도 구불거려서 한 번 차가 잘못 들어가면 다시 돌리기도 애매해질 것 같았다. 그와 별개로 풍경은 단란하니 보기 좋았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높은 건물은 세월이 흘러 군데군데 누렇게 바랜 구석이 있었다. 아이들의 작고 알록달록한 양말과 옷들이 빨랫줄에 가득 널려있었고 어떤 집 창문에서는 무엇인지 모를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아마 이 건물들은 가정집이 모여 사는 모양이었다.

O는 Q가 말한 친근감이 이런 것에서 밀려오는 것인지 잠깐 생각하다가 조금 더 좁은 골목을 향해 들어갔다. 골목에 들어서자 어떻게 만든 것인지 모를 높은 계단이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까 택시를 돌려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O는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버거운 좁은 계단을 오르며 대로변의 게스트하우스를 구해야 했다는 후회감이 밀려왔다.

다행이도 계단을 오른 이후부터는 쉬웠다. 계단 막바지부터 오른 편에 게스트하우스 간판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으로 보이는 할머니는 1층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둔 상태로 푹신한 의자에 앉아 선잠을 자고 있었다. 건물이 좀 낡았는지 문턱을 밟자 끼익거리는 괴기한 소리가 났다. 할머니는 그 소리에 깨어나 푸근한 표정으로 슬리퍼를 고쳐 신고는 O에게 다가왔다. 올 손님이 그밖에는 없었는지 할머니는 특별히 이름이나 숙박 기간을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라오라는 듯 계단을 올랐다. 할머니는 2층에 올라와 복도 끝에 있는 방문을 열었다. 방은 창문이 제법 크게 나있는 넓은 방이었다. O는 예약한 방에 비해 너무 좋은 방을 받은 것 같아 어색하게 손짓을 해가며 예약에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항상 게스트하우스가 빌 때마다 그 방을 내어준다고 말하고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O는 짐을 제대로 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침대에 몸을 눕혔다. 형이상학적인 패턴이 그려진 천장과 누런 빛의 전등이 시야를 메웠다. 하나 같이 익숙한 것이 없는 나라였다. O는 가물거리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른 저녁 수평선에서부터 샛노란 노을이 둥둥 떠올랐다. O는 눈을 감으며 Q가 같은 노을 아래 저녁밥을 먹고 있을 것이란 상상에 빠졌다.

 

*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일어난 O는 입맛이 없어 저녁을 거르고 싶었다. 하지만 1층에 있던 할머니는 근처에 맛있는 가게가 있다며 조금이라도 좋으니 먹어보라고 권했다. 거절에는 소질이 없던 O는 별 수 없이 1층 주방 테이블에 앉았다. 할머니는 오래된 수화기를 들고 익숙하게 저녁을 주문했다. 그는 할머니가 시키는 메뉴가 무엇인지 묻지 않고 들어올 때부터 활짝 열려있던 게스트하우스 입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선선했다. 할머니는 주문을 마쳤는지 수화기를 내려놓고 덩달아 입구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말투로 O에게 말을 걸었다. O는 정확히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문을 열어두는 것은 일종의 관습인 듯했다. 밤이 찾아올 때면 사람 몸을 흐르는 영혼과 비슷한 것-할머니가 손가락으로 제 몸에 둥근 원을 여러 번 반복해 그렸기 때문에 대충 그런 것이라 예상했다.-이 밖을 나가 주변을 돌아본다고 믿는 것 같았다. O는 자신의 영혼은 얼마나 멀리 갔다가 돌아올지 생각해보고 싶었지만, 그가 상상할 수 있는 이 나라의 모습은 너무 적었다.

O가 신비로운 가치관에 잠시 생각을 빼앗긴 사이, 밖에서 자전거가 멈춰서는 소리가 들렸다. 시킨 음식이 도착한 듯했다. O는 할머니 대신 음식을 받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수수한 웃음 소리를 내는 사람이 게스트하우스 문턱에 음식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O가 음식에 향해 있던 시선을 올릴 때쯤 맑은 웃음 소리가 멎었다. Q가 낯선 복장으로 낯선 음식을 든 채 O 앞에 서 있었다.

 

*

 

Q는 벌써 이 나라의 언어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어민에 비해 약간 어눌한 느낌은 있었지만 그는 그런 것은 개의치 않고 가족을 만난 것처럼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세 사람은 같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Q의 몫이 따로 없었지만, 음식을 조금씩 나눠 세 명분으로 만들어 먹었다. O는 음식 맛이 어땠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에서 잘라온 것처럼 그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영 현실감이 없었다. 식사를 끝나고 뒷처리를 하며 할머니는 O와 Q가 구면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는지 잠시 방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가라고 했다. Q도 어쩐지 말을 하고 싶은 표정을 짓는 것 같아서 O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계단을 올랐다.

 

네가 여기 왔다는 게 사실 좀 실감이 안 나네.

 

Q는 창문 근처의 티 테이블 의자에 기대어 O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꼭 옛 것을 더듬는 듯해서 O는 시선을 제대로 맞출 수가 없었다.

 

저도 실감이 안 납니다.

 

내가 얘기할 때마다 반응이 영 시큰둥했었잖아. 약간... 그래, 가고 싶은 여행 가세요. 난 컵이나 닦을게요. 이런 느낌이었거든.

 

O는 실제로 그것과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구태여 그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질문에 하나씩 답을 내놓다 보면 그가 점점 자신을 의아하게 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O는 이 나라에 온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그는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Q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하얗던 피부는 땡볕에서 음식을 날랐기 때문인지 군데군데 탄 것이 보였다. 항상 반듯하게 넘기고 있던 머리는 바람에 날려서 흐트러져 있었다.

 

이 나라에서는 잠을 잘 잡니까?

 

Q는 턱을 괴고 금세 어둑해진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O의 질문에 피식 웃었다.

 

늦잠까지 자. 몇 번 그래서 식당에서 잘릴 뻔 했어.

 

다행이네요.

 

O는 문득 제 앞에 앉은 사람이 먼 타국의 사람이고 전혀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지 떠올려봤다. 그가 하는 말의 일부만 어렴풋이 알아차리고 이해했노라 고개를 끄덕이는, 그로부터 겉돌게 되는 상상. 그것은 어쩌면 이미 현실이 된 것일지도 몰랐다. 찬 바람이 창문을 넘어와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머리카락을 매만지지도 않았고 바람에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았다. 할머니가 해준 영혼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의 영혼이 있다면, 그것은 창문너머로 날아가 높고 낮은 건물 사이를 제 집처럼 돌아다닐 것만 같았다. 바람을 타고 수없이 많은 영혼이 방을 들락날락하는 것을 따라 Q도 세상을 보고, 미련없이 잠을 잘 것 같았다. O는 그날 밤, 그중 하나의 영혼이 창문가에 앉아 다가오는 황혼을 바라보는 꿈을 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