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에 구두가 또각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를 안내해준 직원은 입꼬리를 올려 상냥하게 웃었다.
“여깁니다, 들어가시죠.”
꽤 널찍한 방에 면접관 한 명이 앉아있었다. 땀이 나기 시작하자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나는 인사를 하고는 그의 앞에 덩그러니 놓인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김혜원… 씨?”
그는 손에 든 서류를 뒤적였다.
“최근 2년 동안 어떤 일을 하셨는지 간단하게 소개해주세요.”
면접관이 말했다.
“고양이를 길렀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두 손으로 무릎을 감싸 쥐었다.
“그렇군요. 어떤 고양이죠?”
면접관은 흥미롭다는 듯 안경을 추켜올렸다.
“아주 착해요…. 애교도 많고요. 아, 육포를 좋아해요.”
“육포를 좋아한다… 흠.”
면접관은 잠깐 생각에 빠지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군요.”
익숙한 어조였다.
그는 나를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육포를 문 고양이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글쎄요…, 제 생각에는….”
면접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양이가 제게 기쁨이 돼준다는 게 제일 크죠. 집에 가면 저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거요. 그게… 제일 좋아요.”
나도 모르게 말이 빨라졌다. 나는 말을 마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군요.”
면접관이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질문은 이 정도로 하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수고했어요. 이제 가보셔도 좋습니다.”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펫으로 된 바닥에 고양이 털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면접관의 눈을 피해 재빨리 치마를 털며 내가 말했다.
“안녕히 계세요.”
정장 치마를 입고 버스에 오르는 건 귀찮은 일이었다. 낑낑대며 간신히 자리에 앉으려는데 핸드폰까지 울렸다.
“여보세요?”
―응, 나야. 바빠?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내 퉁명스러운 말투는 금세 머쓱해졌다.
“아, 아니야. 말해.”
―응, 지금 부동산이야.
엄마가 말했다.
―괜찮은 집 찾았어. 계약하려고.
“그래? 잘됐네.”
엄마는 응, 하고 대답하다가 재채기를 심하게 했다.
“괜찮아?”
엄마는 몇 번 목을 가다듬었다.
―어제 좀 춥게 잤더니. 하루 종일 이러네.
나는 잠깐 할 말을 고민했다.
“그 작은방… 역시 좀 춥지?”
―그런대로 괜찮아. 새벽에 좀 바람이 많이 들어와서 그렇지.
“그럼 오늘은 내 방에서 잘래?”
―어?
내 말에 엄마는 살짝 놀란 것 같았다.
―그래도 돼?
“내 방은 난방이 잘 되잖아. 난 거실에서 자도 돼.”
―아…. 아냐.
엄마가 대답했다.
실망한 목소리 같았던 건 내 착각이었을까?
―그럼 계약해야 해서. 이따 집에서 봐.
“응.”
나는 전화를 끊었다.
면접이 끝났을 때보다 더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야옹―”
고양이가 화단 앞에 앉아있었다. 온몸이 흰색인데 꼬리만 까만 고양이다.
―그럼 어머니는 아직도 너 회사 다니는 줄 아시는 거야?
유라가 말했다.
“응. 오늘 면접도 얘기 안 했어.”
―괜찮은 거야? 아무리 그래도… 엄마잖아.
“어차피 엄마는 곧 집 구해서 나갈 건데 뭐. 그때까지만 얘기 안 하는 거야. 혹시 나중에 다시 보더라도 그땐 내가 취준생이 아닐 거고.”
―너… 엄마랑 계속 안 보고 살려고?
“언젠 보고 살았냐. 지금이 더 어색해.”
고양이가 흙에 뒹굴기 시작했다. 나는 멀찍이서 눈으로만 지켜보았다.
―너도 참. 이번 기회에 잘해보지. 어머니도 그러고 싶어서 너한테 같이 살자고 하신 거 아냐?
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 유라의 말에 기뻤다면 혼자 버텼던 15년의 세월에 잘못이라도 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다행히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아니야, 그런 거. 진짜로 갈 데가 없는 것 같더라. 할머니 장례식장에도 캐리어를 끌고 왔었다니까.”
―그래? 뭐….
유라는 거기까지만 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제3자가 오지랖을 부려도 괜찮은 범위까지만. 딱 내가 엄마에게 두고 있는 거리만큼이었다.
―어릴 때 너희 집 놀러 가면 아줌마가 맛있는 거 엄청 많이 해주셨었는데. 너, 그래도 엄마 있으니까 요즘은 즉석요리 같은 거 안 해 먹지?
나는 화제를 돌리는 법을 알고 있었다. 곧 유라는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을 때까지 직장 상사 욕을 실컷 했다. 늘 그렇듯 유라가 집에 도착하면 통화는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그건 나만의 근무였다. 어느새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화단에서 그만 퇴근할 시간이었다.
“다녀왔습니다.”
나는 이미 불이 켜진 집으로 들어섰다.
“그래, 어서 와. 일찍 퇴근했네?”
티비 소리가 시끄러운 거실에는 만두 냄새가 진동을 했다.
“만두 사 왔는데, 먹을래?”
나는 엄마가 보기 전에 옷부터 갈아입었다.
“밥 먹고 왔어!”
벗어 던진 정장에는 보풀이 잔뜩 일어있었다. 벌써 그렇게 많이 입었나?
“참, 아까 집으로 네 친구한테서 전화 왔었어.”
엄마가 거실에서 소리쳤다.
“집으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응. 지희 기억하지? 너 초등학교 때 엄청 친했던. 네 핸드폰 번호를 몰라서 집으로 전화가 왔더라고.”
속이 울렁거렸다. 엄마의 목소리에는 반가움만이 묻어났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지희 결혼한대. 너한테 청첩장 보낸다고, 번호 좀 알려달라더라.”
나는 방에서 나와 엄마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15년 전 머리 위에 돋아났던 두 귀가 여전히 뾰족이 보였다.
“세월 참 빠르다…. 벌써 지희가 결혼을 하는구나. 너희 둘 책가방 메고 손 붙잡고 다니던 게 생생한데. 언제 커서 결혼을 한다고, 참….”
살랑살랑 바닥을 쓸고 있는 건 만두에 집중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는 꼬리였다. 나는 학교가 끝나서 집에 오면 늘 주방에 서 있던 엄마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두 귀도, 살랑거리는 꼬리도 없는 엄마.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엄마, 근데 왜 자꾸 사다 먹어.”
나는 거실 쪽을 등지고 주방으로 향했다.
“집에서 해 먹지.”
진한 만두 기름 냄새가 거실에 진동했다.
“그냥. 이게 편해.”
엄마는 짧게 대답했다.
*
오늘의 출근지는 서점이었다.
나는 신간 코너를 둘러보다가 에세이집을 하나 집어 들었다. 겉표지를 장식한 고양이는 동그란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귀엽죠?”
점원이 웃으며 다가왔다.
“이번 에세이집에 실린 사진들, 전부 다 고양이 협회에서 극찬을 받았어요.”
점원은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고양이를 좋아하시나 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의 입꼬리가 잔뜩 올라갔다.
익숙한 표정이다.
나를 다 간파했다는 얼굴.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분도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요. 한번 도전해보세요.”
“전….”
왜인지 어제 아파트 화단에서 본 꼬리만 까만 고양이가 떠올랐다.
“괜찮아요. 전 고양이를 키우거든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점원의 눈이 커졌다.
“아… 그러시군요. 죄송해요, 제가 몰라뵙고….”
나는 당황해하는 점원을 여유롭게 위로했다.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점원은 재빨리 다른 책 몇 권을 가져와 내밀었다.
“그럼 이건 어떠세요?〈내일 죽어도 그루밍은 해야겠어〉. 요즘 고양이 집사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통하는 산문집이에요. 고양이 ‘치즈’ 아시죠?”
내 여유로움은 그 잠시를 못 참고 곧 눈 녹듯이 사라졌다.
“…네? 누구요?”
“셀럽 고양이 치즈요! 어머, 모르세요? 고양이 키우는 분들은 다 아시던데.”
나는 재빨리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당연히 알죠. 치즈는… 왜요?”
“그 치즈가 추천해서 화제가 된 책이에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저도 당장 사서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알고보니 점원은 치즈의 열렬한 팬이었다. 알고 싶지 않았던 치즈의 사돈의 팔촌 근황까지 듣고, 손에는〈내일 죽어도 그루밍은 해야겠어〉를 든 채로 나는 서점을 나왔다.
초등학생 때 나에게는 징크스가 있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면 얼굴이 새빨개져서 속을 다 들키게 된다는 거였다. 그래서 내가 치즈를 부러워했는지도 모르겠다. 전학생에게는 모두가 먼저 말을 걸었으니까.
“인사해라, 얘들아.”
담임이 말했다.
“이번에 전학 온 치즈다. 자, 치즈, 친구들에게 인사하렴.”
치즈는 야옹, 하고 자신을 소개했다. 반 아이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그럼 치즈는… 저기 혜원이 옆자리에 앉아라.”
치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내 옆으로 왔다.
“야옹.”
치즈가 상냥하게 인사했다.
“나… 나도 잘 부탁해.”
나는 볼이 빨개지는 걸 느꼈다.
치즈는 금세 반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아졌다. 다들 치즈의 윤기 나는 노란빛 털을 칭찬하면서 관심을 보였다. 나는 치즈와 가까워지기 힘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학교가 끝난 뒤, 집에 오자마자 내가 치즈 이야기를 하자 엄마가 말했다.
“너도 좀 적극적으로 다가가 봐.”
엄마가 말했다.
“걔도 전학 첫날이라 낯설었을 텐데.”
나는 엄마의 조언대로 다음 날 치즈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
나는 땀이 나는 손을 연신 문지르며 말했다.
“피… 필통 예쁘다.”
치즈가 눈을 깜빡였다.
“야옹.”
우리는 금세 친해졌다. 치즈는 겉보기와는 달리 말도 많고 친근했다. 하지만 반 아이들은 치즈와 친해진 내가 못마땅한 건지 그냥 관심이 없는 건지 나를 모르는 척했다.
“치즈야.”
반장은 치즈를 유난히 좋아했다. 쉬는 시간이면 우리 자리로 달려와서는 치즈에게 지극정성이었다.
“이거 가질래? 난 하나 더 있는데.”
치즈는 반장이 건넨 샤프를 받아들었다. 샤프에는 달랑거리는 장식이 매달려있었다.
“야옹.”
치즈의 눈이 반짝였다.
반장과 치즈는 자주 어울렸다. 점심시간에도 우리가 밥을 먹고 있으면 치즈를 찾아 친구들과 몰려오곤 했다. 하지만 늘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반장이 나에게 처음 말을 건 점심시간, 급식에는 생선가스가 나왔다.
“야옹.”
치즈는 생선가스를 무척 좋아했다. 나는 오랜만에 기분 좋게 밥을 먹었다.
“혜원아, 잠깐만.”
반장은 평소와 달리 친구들과 서두르며 달려오더니 내 옆자리에 앉았다.
“응?”
반장은 신이 난 건지 모를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방금 우리 반에서 누가 제일 싫은지 투표를 했거든? 근데 너를 뽑은 사람이 세 명이나 나왔어.”
나는 잠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반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아니, 반장을 그렇게 똑바로 본 게 처음이어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반장은 씰룩거리는 입꼬리로 상냥하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할 말을 찾고 있는데 순간 치즈가 보였다. 치즈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야옹.”
치즈는 짧게 말하고는 다시 생선가스를 한입 베어 물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짜고짜 엄마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때문이야!”
내가 소리쳤다.
“엄마가 치즈랑 친하게 지내라고 했잖아. 난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고!”
눈물범벅이 된 내 시야로는 엄마가 잘 보이지 않았다. 흐릿했다.
“이제 치즈가 날 싫어할 거야. 나랑 친구하고 싶어하지 않을 거라고.”
엄마의 머리 위에 뭔가 돋아났다.
고양이 귀다.
“사과해! 나한테 사과하라고!”
엄마는 사과하지 않았다. 알고 있었다. 엄마는 사과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 탓을 할 수는 없었다. 고양이가 되고 싶지는 않아.
그래서 나는 기꺼이 배신을 당하기로 했다.
―이건 전부 엄마 때문이야.
나는 몇 번이고 되뇌었다.
내 걱정과 달리 학교에서는 반장도 치즈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를 대했다. 계속해서 치즈와 다녀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건 나였다. 치즈가 입꼬리로 웃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확실하지 않다. 그때부터 눈앞은 흐릿해졌고, 나를 배신한 친구들은 하나둘 고양이로 바뀌어 갔기 때문이다.
그 주, 우리 반은 자리를 바꿨다.
“안녕! 너 공책 예쁘다.”
옆자리가 된 유라는 먼저 말을 거는 애였다. 유라 옆에서 내 얼굴은 빨개질 일이 없었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유라를 집으로 데려와 놀았다.
“너희 엄마 떡볶이 진짜 잘 만드신다.”
유라가 말했다.
“분식집에서 사 먹는 것보다 맛있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라와 함께 있는 동안 내 곁에는 치즈도, 성가신 고양이들도 없었다. 엄마도 곧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거야. 분명했다.
“어? 이게 뭐지?”
유라가 떡볶이 국물에서 무언가를 손가락으로 집어 들었다.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고양이 털이었다.
“털…?”
유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양이 털인 것 같은데?”
“맞아.”
나는 재빨리 말했다.
“우리 집, 고양이 키워.”
유라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고양이? 한 번도 못 봤는데?”
나는 유라의 눈을 피했다.
“지금은 없어. 벼… 병원 갔어.”
그때 누군가 집을 나서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구나. 좋겠다!”
유라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고양이 키우고 싶다. 부러워.”
유라가 가고 나자 집 안은 고요해졌다.
“엄마!”
나는 소리치며 거실 불을 켰다.
“엄마, 왜 불을 끄고 있어?”
부엌도 마찬가지였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
방으로 향하려는데 거실 탁자에 놓인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나는 쪽지를 집어 들었다.
―할머니랑 잘 지내.
쪽지가 내 손에서 힘없이 꾸겨졌다.
“이러면 어떡해. 이러면…. 진짜 거짓말이잖아.”
나한테 부럽다고 했는데. 요리 잘하는 엄마. 고양이를 키우는 것도. 순식간에 전부 사라져버렸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건 전부….”
내가 중얼댔다.
“이건 전부 고양이 때문이야. 나한테 고양이가 없어서….”
다음 페이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