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풍선껌을 도둑맞은 것은 병원이었다.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올라온 영상 때문에 악플과 각종 루머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제보자는 대학 시절, 김김밥이 자신이 그녀의 남자친구와 바람을 폈다고 소문을 퍼뜨렸으며, 제대로 된 해명도 없이 결백을 주장하는 자신을 묵살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결국 꽤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린 지 두 달 만에 정신과 진료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옆자리에 하얀 얼굴에 똑단발을 한 여자가 앉는 것이었다.
“윤다영?”
젖살이 빠진 것만 빼면 똑같아서 한눈에 알아보았다. 반가움과 놀라움 중에 굳이 꼽으라면 둘 다 놀라움이었던 것 같지만, 어딘가 다들 의기소침해져 있는 이곳에서 말동무가 있는 것은 꽤 괜찮았다.
“너 방송하는 거 봤어. 유명하더라.”
윤다영이 말했다.
“우리 학원 애들이 엄청 좋아해.”
윤다영은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뭐, 나쁘지 않아, 라고 했지만 일을 시작한 지 반년 만에 스트레스라고 생각했던 게 공황장애라는 걸 알았다.
“하루 종일 교실에만 있다보면 그런 게 있어. 여기서 나가고 싶은데 나가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 매일, 아니 하루종일 그 생각을 반복해.”
분위기상 그래야 할 것 같아 인터넷 세계의 익명성과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엮어 대강 이곳에 오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윤다영은 알 것 같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름 얘기,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거 보니까 좋더라. 예전에는 되게 싫어했잖아.”
“내가 그랬나?”
김김밥은 멋쩍게 웃었다.
물론 그랬을 테지만, 이젠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풍선껌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이름보다 더 신경 써야 할 게 생겼으니까.
“너 혹시 기억나? 2학년 때쯤에, 서로 이름 스티커 붙여주는 거 유행했었던 거.”
윤다영이 말했다.
“다들 너한테 스티커 받고 싶어했던 거 알아? 네 거는 다들 달라고 해서 금방 다 없어졌잖아. 나도 네 거 붙이고 다니면 학원에서 애들이 다 한 번씩 물어보고 그랬어. 이건 누구냐고. 진짜 이름이냐고.”
뭔가 머쓱한지 웃으면서 얼버무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뭐라고. 참 철이 없었어.”
김김밥은 그렇다면 자신은 여전히 철이 들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고작 그거였다. 윤다영이 나를 기억하는 이유는 학원에서 받았던 그 몇 초간의 관심 때문이었고, 나는 이름 스티커를 팔아야만 반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이름을 팔아 돈을 벌고 있었다.
“이름보다도, 그런 거 있잖아. 이름 때문에 다들 쳐다보는 거. 그걸 다들 부러워했던 거지.”
“다들 부러워했다고?”
김김밥은 윤다영이 이름이 바뀌었던 것을 기억하는지 궁금했다. 혹시 기억한다면, 저런 말은 못 하겠지.
“응. 넌 뭐랄까… 다들 기억하는 애잖아. 지금도 그렇고. 어딜 가던 너한테 주목할 수밖에 없으니까.”
습관적으로 가방 속에 넣어둔 양철통을 만졌다.
이게 나를 평범하게 만들어 주긴 했던 걸까? 그러고 보니 정말 그랬다면, 그날 그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다.
목숨처럼 여겼던 껌을 대가 없이 건네는 것이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술기운에 착각한 건지는 몰라도, 그날따라 풍선껌이 너무 무거웠다. 두 개나 남았구나.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민자영이 자신의 이름을 고래고래 외치는 것도, 즐겁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즐겁게 하는 것도 싫었다.
반시우도 그렇게 말했었다. 부럽다고. 그날도 눈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부러워할 것 없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소원에 대가가 따른다는 건,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름이 바뀔 때마다 다시 돌아온 풍선은 늘 전보다 몇 배는 더 커져 있었다. 벌써 차례가 돌아왔나 초조했다. 다음 사람에게 얼른 넘겨야 하는데. 이러다간 또 폭탄을 맞게 생겼다.
펑, 하고 터지면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하하하, 나는 아니다. 너구나, 너. 이번 판의 불쌍한 애는 너야.
그래서 알고 싶었다. 이걸 너에게 주면, 나는 가벼워질 수 있을까?
내가 풍선을 불면, 나도 가벼워질까?
정말 만에 하나 반고흐가 풍선을 불어준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워하는 게 뭔지 조금은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김김밥보다는 빈센트 반 고흐가 사는 세상이 조금은 나을 것도 같았다. 세상은 원래 낯선 사람에게 조금 더 친절하니까.
*
〈처음 댓글을 달아봅니다〉.
미끼를 던진 지 이미 너무 오래 지났다. 이대로 아무것도 못 잡고 돌아가나 하고 있었는데, 낚시바늘을 문 것은 엉뚱한 사람이었다.
‘태백산 불곰’이라는 아이디의 그는 서툰 타자로 길고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는데, 대충 요약하자면 20년간 포장이사 일을 하면서 그렇게 특이한 이름을 가진 고객은 처음 봐서 기억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얼마 뒤 회사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졸업장을 택배로 받았다. ‘김김밥’이라고 적힌 수신인에 그녀가 누구였는지 떠올랐다고 했다. 뭐가 뭔지 다 알 수는 없었지만, 그 택배는 문득 그에게 진짜 졸업장을 받고 싶다는 용기를 주었다.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고, 대학에 가고, 한에 맺힌 듯 대학원까지 갔다. 그는 끝내 지금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며, 고맙다는 이야기로 긴 글을 마무리지었다. 법적 자문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구멍 아래에 모인 사람들은 원래 이렇다 할 이유없이 누군가를 미워하다가도, 왜 그랬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
태백산 불곰의 댓글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잠재우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하나둘 자신들이 무엇에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그저 제보자가 증거물로 제시한 편지가 갖는 법적 효력이 약해지고 또 다른 증거물인 졸업장에 의해 기각되었을 뿐이었다. 재판장은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피고인 김김밥은 풀려났다.
“정말 그건 평생 안 쓸 생각이야?”
병원에서 마주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정신과 같은 곳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생각해왔다. 나와는 평생 상관없는 곳. 한번 발을 딛게 되면 내가 얼마나 엉망인지 인정해버리는 꼴이 될 것이었다.
댓글을 하루에도 열댓 개씩 달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따라 달기 시작하는 잔인한 말들이, 마치 나를 따르는 작은 병사들 같았다. 하나둘씩 병사들은 내 밑으로 잔뜩 모여드는데,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매일같이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다. 다시 반시우의 라이브 방송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오랜만이다. 넌 나한테 할 말이 그거밖에 없냐?”
그렇게 대꾸하는 김김밥은 좋아보였다.
법원에서는 나를 정신병자 취급하는데, 같은 병원에서 같은 진료실을 나서는 이 여자애는 여기서조차 자신이 특별하다는 듯이 굴었다. 화가 치밀었다.
“인터넷 방송, 정말 하고 싶은 일이야?”
반시우는 딱딱하게 물었다.
“평범해지고 싶어했잖아, 너. 이제라도 그건 나한테 넘기고 남들처럼 취직 준비하는게 적성에 맞지 않겠어?”
김김밥은 가방 안에서 익숙한 양철통을 꺼냈다.
“어차피 이게 있는 한 난 평범한 적이 없었어.”
반시우는 통을 당장 움켜쥐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유를 생각하거나 과정에 납득하는 것은 포기한지 오래였다. 그저 반사적으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었다.
“그걸 가지고 있는 이유가 뭔데?”
반시우가 말했다.
“좋아하지도 않잖아. 간절하지도 않고. 난 간절해. 간절하게 필요해.”
김김밥은 반시우를 쳐다보았다.
“뭐가 그렇게 간절한데?”
“이름.”
반시우가 대답했다.
“네 이름이 간절해.”
김김밥은 양철통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들었다.
“재판은 어떻게 됐어?”
자기가 고소해놓고는 안부 묻듯 말하고 앉았다. 반시우는 피식 웃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기 있는 거 안보이냐. 정신과 상담이 요구된다나 뭐라나.”
“태백산 포장이사, 너도 그때 자영이가 얘기한 거 기억나지?”
김김밥이 말했다.
“그 아저씨가 최근에 연락이 닿았는데, 변호사 되셨대. 고맙다면서, 법률 자문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더라.”
“그래서?”
반시우가 눈썹을 치켜들었다.
“지금 나한테 그 아저씨를 소개라도 시켜주겠다는 거야?”
“응. 변호사 구할 돈도 없을 거 아니야.”
김김밥이 대답했다.
“됐어, 기껏해야 벌금이나 물 텐데.”
“그럼 벌금 낼 돈은 있어?”
반시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상관인데?”
김김밥은 잠시 입술을 깨물더니 이내 양철통을 내밀었다.
“이걸로 내라.”
“뭐?”
“말했잖아, 이게 소원을 들어준다고.”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반시우가 알고 있던 동물의 왕국은 단순했다. 사자로 태어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사자는 이들을 사냥한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그날 교양 수업 강의실에서도, 미대 건물 앞에서도, 작명소 부스 안에서도, 일일 포차에서도, 나는 그걸 하고 있었는데.
왜 이 이상한 애는, 자신이 사자라는 걸 모르는 걸까. 아니, 왜 내게 풍선껌을 내미는 걸까? 여기가 동물의 왕국이 아니었단 말인가. 그럼 여긴 어디지?
반시우는 포장지를 벗기고 껌을 입안에 넣었다. 복숭아향이다.
잘근잘근, 질겅질겅, 금세 걸쭉했던 작은 공이 입안에서 뛰어놀았다.
어딘가 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던 것들이, 폐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느새 입 한가득 차 버려서, 당장 내뱉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온 힘을 다해서, 그러나 부드럽게 내뱉었다.
후우우-
그러면 가볍게 가볍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아아, 이제야 알겠어.
여기는 놀이공원이었다. 우리 건너편의 사자는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는지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다음은 얼룩말을 보러 갈 차례다. 내가 달려나가자 엄마는 내 이름을 부르며 뛰지 말라고 외쳤다. 가는 길에 만난 풍선을 불어주는 아저씨가 내게 방금 만든 풍선 칼을 건넸다.
나는 신이 나서 풍선을 휘둘렀다. 그 바람에 지나가던 여자애가 잔뜩 흩뿌리고 간 비눗방울이 터져버렸다.
펑!
*
“자, 복숭아 반 여러분. 먼저 자기소개를 해볼까요?”
긴 머리에 볼이 유난히 발그레한 복숭아 반 선생님이 말했다.
“윤다영입니다.”
윤다영이 말했다.
“저는 박지상이에요.”
박지상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한규선이요.”
한규선이 말했다.
다들 마지막 남은 사람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여자아이는 머뭇거렸다.
“저, 저는 김김밥이라고 합니다.”
누군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한규선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윤다영은 갑자기 선생님을 쳐다보더니 김김밥을 가리켰다.
“선생님, 쟤 이름이 이상해요.”
복숭아 반 선생님은 윤다영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가르쳤다. 사과도 하게 했다. 하지만 김김밥은 그날 이후로 복숭아 반에서 가장 이상한 애가 되었다.
“오늘은 폭탄 돌리기 놀이를 할 거예요.”
복숭아 반 선생님이 말했다.
“자, 이 풍선이 폭탄이에요. 얼른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터져버리니까 조심해요!”
아이들이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손에서 손으로, 분홍색 풍선이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김김밥이 다섯 번째로 풍선을 받은 순간,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시간 종료!”
아이들이 소리내어 웃었다. 김김밥은 풍선을 발로 밟아 터뜨려버렸다.
펑!
“꺄악!”
한규선이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 김김밥 이상해요!”
김김밥은 규선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네가 더 이상해!”
한규선이 울기 시작했다. 김김밥은 복숭아 반 선생님께 혼이 나야 했다.
자리에 돌아왔을 때, 옆자리에 앉은 박지상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거 먹어.”
박지상이 말했다.
“고마워.”
김김밥은 사탕을 입에 넣었다. 달았다.
“난 네 이름, 멋진 거 같아.”
박지상이 말했다.
“아까 한규선을 무찌른 것도. 우리 이거 갖고 같이 놀래?”
블록 장난감이었다. 김김밥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놀이 시간 내내 아주 근사한 성을 만들었다.
“나도 같이 해도 돼?”
윤다영이 다가왔다. 윤다영은 성 주변에 갖고 놀던 인형들을 배치시켰다.
“이것도 붙여줘.”
한규선은 직접 그린 깃발을 내밀었다. 복숭아 반 선생님은 가위와 테이프로 깃발을 멋지게 잘라 붙여주었다.
“성 이름은 뭘로 하지?”
박지상이 김김밥에게 물었다.
“음….”
김김밥은 잠시 고민하다가 선언했다.
“여긴 김김밥의 성이야.”
띵동.
깜빡 졸았나 보다.
김김밥은 잠을 깨려고 애쓰며 의자에서 몸을 똑바로 일으켰다.
진료대기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이 보였다.
“김김밥 환자분?”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옆자리에 앉은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네.”
김김밥이 대답하자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료실 들어가실게요. 다음 반시우 환자분 대기해주세요.”
주섬주섬 일어서려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자신을 여전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름이 참 예쁘시네요.”
그래, 다 집어치우자. 이 말이 듣고 싶었다.
김김밥은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
다음 페이지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