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센트 반 고흐.
반시우가 꿈꾸던 이름은 그런 거였다. 모두가 알고, 특별하다고 이야기할 이름. 하지만 개명은 충분하지 않았다. 타고난 게 아니었으니까. 그건, 첫 데이트 날 몰래 향수를 뿌린 것을 들키는 것만큼 굴욕적인 일이었다.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지 반년쯤 되었을 때, 반시우는 전공을 살린 미술 컨텐츠를 때려치웠다. 그 대신 삼센치도 안 되는 시커먼 카메라 구멍에 몇 시간이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접속자가 사오십 명 정도 늘어난 것도 있었지만, 그편이 훨씬 더 쉽기도 했다. 듣고 싶은 말, 하고 싶은 말, 말도 안 되는 말을 말이 되는 것처럼 하면 그만이었다.
카메라 구멍 속 사람들은 반시우가 하는 말을 받아들였다. 정말 믿는지는 몰랐다. 또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구멍에 말을 쏟아내기만 하면 되었다. 사람들은 믿지 않으면서도, 믿고 싶어서, 또 듣고 싶어서 매일 이 구멍 아래로 모이는 것이었다.
공개적인 사랑과 전쟁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시우는 축제 부스에서 그 이상한 여자애를 다시 만났다.
〈명명(明冥) 작명소〉.
손으로 썼는지 삐뚤빼뚤한 글씨가 박스 조각 위에서 춤을 췄다. 학교에 이런 이상한 동아리도 있었나. 꽤 줄이 길었다.
거의 마지막으로 차례가 되어 천막 안으로 들어섰는데, 큰 눈을 꿈뻑거리는 김김밥이 앉아 있었다.
“어서오세요.”
뭐 때문에 그렇게 긴장이 됐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름이 참 예쁘시네요, 하던 순진한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게 분명했다. 아니면 이런 재수 없는 여자애 앞에서 땀이 날 리가 없었다.
“저… 여기는-”
“타로점 안 봅니다. 저희는 작명만 해요.”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날카로운 인상의 여자애가 껌을 짝짝 씹으며 끼어들었다. 잔뜩 뻗친 단발에 마스카라가 시커맸다.
“개 고양이 이름은 오천 원, 사람 이름은 만원이에요.”
“뭘 작명해드릴까요?”
김김밥이 물었다.
이렇게 생겼구나. 똑바로 마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기억 속에서는 더 까무잡잡하고 말랐던 것 같았는데, 어딘가 이름처럼 하얗고 동그랗게 생겼다.
“제 이름이요.”
반시우가 대답했다.
“본인 이름이요? 개명하시는 거예요?”
반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반시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반고흐예요.”
푸흡, 하고 옆 테이블 여자가 웃었다. 김김밥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아아, 반 씨시구나.”
사전을 뒤적이는 김김밥의 손가락이 바빠졌다.
“어디 보자….”
“본명이세요?”
옆에 테이블 여자가 진한 마스카라를 칠한 얼굴을 들이밀었다. 반시우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개명하시려고요? 이름 완전 멋있는데.”
등골이 괜히 저릿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코딱지만 한 까만색 천막이 꼭 카메라 구멍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습관처럼 말이 술술 나왔다.
“야아, 힘드셨겠어요. 이름으로 힘든 사람이라면 여기도 한 사람 있죠.”
마스카라는 김김밥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우리 김김밥이, 동지를 만났네?”
마스카라가 말했다.
“어때,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풍선껌 하나 정도 양보해드려.”
김김밥은 어깨를 으쓱였다.
“고흐 님은 개명하시면 되잖아. 난 못하니까.”
“왜요?”
반시우가 불쑥 물었다.
“그게… 설명하자면 길어서요.”
얼버무리는 김김밥 뒤로 눈을 반짝이는 마스카라의 입이 가벼워 보였다. 미대의 반고흐는 그날 일일 포차에서 거하게 돈을 쓰기로 했다.
*
“거기 아가씨, 이것 좀 가져가.”
늘어난 츄리닝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메로나를 문 취준생에게는 지나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복숭아야. 가져가서 먹어.”
세일도 경조사 때만 하는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웬일이지, 했는데 복숭아를 담은 검은 봉지 뒤로 웬 꼬마가 불쑥 튀어나왔다.
“우리 아들이 너무 팬이래. 같이 사진 한 번만 찍어주라, 응?”
아니, 이번 주에 들은 어떤 탈락 사유보다도 황당했다.
“저, 저요?”
김김밥은 재빨리 입에 묻은 아이스크림을 쓱 닦았다.
“응. 아까부터 봤는데, 누나 맞죠? BJ 김김밥!”
아주머니 등 뒤에서 나온 꼬마가 김김밥을 대뜸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사진 좀 찍어주세요.”
“하하, 꼬마야, 네가 뭘 좀 오해한 것 같은데….”
문득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오늘이 며칠이었더라. 아니, 며칠째였지?
그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민자영이었다.
“대박, 대박, 대박!”
민자영이 소리를 지르며 방방 뛰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어떻게 이런 일이!”
함박웃음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민자영은 화면을 연신 들여다보았다.
“이거 진짜냐? 꿈 아니지?”
“어째 네가 더 신난 것 같다.”
김김밥이 말했다.
“아이, 너 잘 된 게 기뻐서 그러지!”
민자영은 오버를 하며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게 말이 되냐? 300만 구독자를 보유한 개인 방송 BJ라니. 너 이제 인생 폈다!”
“근데 이상하네.”
김김밥이 말했다.
“왜 원래대로 안 돌아왔지? 원래 이름을 뺏긴 쪽이 원하는 걸 가져가는데.”
“가져갔잖아.”
민자영이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일 년 동안 실컷 돈 벌었으면 됐지. 이제 주인한테 돌려줘야지.”
주인이라.
김김밥은 포크로 복숭아 한 조각을 하나 찍어 베어 물었다. 아주 단 과즙이 터져 나와 입안에서 스멀스멀 자리를 잡았다.
“있지, 자영아.”
김김밥이 말했다.
“나 요즘 계속 이상한 꿈을 꾼다.”
“꿈?”
민자영이 복숭아를 쩝쩝대며 되물었다.
“어떤 꿈?”
“그냥 잘생긴 남자가 나와.”
“그리고?”
민자영이 눈썹을 까딱였다.
“…복숭아 얘기를 했던 거 같아.”
“개꿈이네.”
민자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가 나한테 풍선껌을 줬어.”
김김밥이 말했다.
“무슨 말이야?”
“그냥 요즘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
김김밥은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양철통을 집어 들었다. 안에는 마지막 풍선껌이 들어있었다.
“혹시 내 이름도 누군가랑 바뀐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뭐?”
“생각해봐. 폭탄 돌리기 게임 같은 거야. 폭탄은 탄생해버렸고,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누군가에게 떠넘기기 시작해. 그렇게 계속 옆 사람에게 폭탄을 떠넘기는 거지.”
민자영은 피식 웃었다.
“그럼 진짜 김김밥은 누군데? 그 아저씨?”
김김밥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름이 바뀐 사람은 그 사실을 기억 못 하잖아. 내가 개명을 할 수 없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면? 이게 풍선껌 때문에 바뀐 이름이라면 말이 돼. 난 내 원래 이름을 기억 못 하는 것뿐이고, 내가 모르고 그 사람의 마지막 풍선껌을 먹은 거지.”
민자영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네 말 대로라면 사람들은 모두 폭탄을 맞을까 봐 무서워서 서로에게 떠넘기기만 했다는 거네.”
김김밥은 민자영이 천천히 복숭아를 씹어 삼키는 것을 지켜보았다.
“풍선껌이라는 거, 정말 그게 다라고 생각해?”
“무슨 뜻이야?”
김김밥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네가 말했잖아. 풍선껌은 소원을 들어주는 거라고. 근데 사람들이 고작 그렇게 풍선껌을 썼을까? 누가 폭탄을 맞을까, 누가 그 불쌍한 당첨자일까 서로 눈치나 보면서 책임을 떠넘기면서?”
김김밥은 복숭아를 힘주어 꾹꾹 씹었다. 맛이 떫어진 것 같았다.
“아님 뭔데? 이게 특권이라도 된다는 거야?”
민자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김김밥은 몰랐지만, 민자영이 새로고침 버튼을 누를 때마다 구독자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
“자, 너 하나 줄게.”
김김밥이 건넨 풍선껌의 의미가 동정인지 동질감인지, 그것도 아니면 술기운에 한 실수였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저 그걸 받아들었을 때 반시우는 자신이 조금의 죄책감을 느꼈다는 것과, 그보다 더한 성취감을 느꼈다는 사실만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은 언제라도 그저 그 풍선껌을 씹으면 되었다.
그게 왜 망설여졌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마치 잘못한 것을 들키길 바라는 사람처럼, 매일 몇 번이고 반성문을 쓰듯이 작명 동아리방 앞에 왔다가 다시 돌아가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길에서 친구가 부르는 자신의 이름을 들은 것이었다.
예기치 못한 우연으로 본명을 들켰을 때, 김김밥은 놀란 것 같지 않았다. 애초에 내 말을 믿지 않았다는 건가. 그건 조금 화가 났다.
“야, 너 이름 뻥이었냐?”
민자영이 따지러 다가오는 험악한 얼굴 뒤로, 김김밥의 무덤덤한 얼굴은 반시우에게 동맹 종료를 알렸다. 모른 척하고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뺏기기 싫었다. 넌 타고 난 거잖아. 넌 아무 노력도 안 했잖아.
내가 아니야. 배신은 네가 한 거지.
다시 독촉장이 쌓이기 시작했다.
일 년 동안 깨끗했던 책상이 다시 널브러진 종이들로 뒤덮였다. 거기에 적힌 숫자들은 지난해보다 몸을 불린 채로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할 이야기가 많아졌을 때부터 뭔가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 같다. 속이 텅 빈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풍선을 불 때 너무 깊게 숨을 불어넣은 게 문제였던 것 같다.
―풍선을 분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거야. 이름을 뺏긴 쪽이 원하는 걸 하나 가져가거든.
소원을 들어주는 풍선껌이라고,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반시우는 같은 자리에 앉아서 깜빡이는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김김밥의 라이브 방송〉.
하지만 아무리 불어도, 풍선껌은 김김밥의 소원만을 이루어주는 것 같았다.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섞여버려서, 걔가 가져간 게 내 돈인지 자신의 이름인지 헷갈린다. 속이 또 울렁거렸다.
띵동.
새로운 업로드를 알리는 알림이었다.
달칵.
〈김김밥의 명명(明冥) 작명소〉.
또 그 둘이다. 변함없이 책상에는 너덜너덜한 사전을 펴놓고, 벽에는 까만 천을 둘러놓고 나란히 앉아 있다. 뭐가 좋다고 저렇게 깔깔대는 거지. 실시간 댓글이 끊임없이 카메라 구멍 위로 빨려 올라갔다.
구멍은 그 많은 말들을 잡아먹듯이 빨아들였다.
화면 앞에서 반시우는 하릴없이 구멍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를 구원해줄 그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아아, 구멍에서 뭔가 쏟아진다.
“풍선껌….”
자기 방의 책상인 모양이었다. 이것저것 잔뜩 놓인 물건들 사이로 카메라 앵글에 익숙한 양철통이 잡혔다.
통 안에 든 건 마지막 풍선껌이겠지. 반시우는 알고 있었다. 김김밥은 저 껌을 씹을 생각이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아저씨 이름으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니까? 진짜 웃기지 않냐? 아하하하.”
민자영이 배를 잡고 웃다가 일일 포차의 플라스틱 테이블 위로 양철통을 흔들었다.
“그 졸업장 아직도 있지? 위 사람은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였으니 이 상을 수여합니다. 이름, 박, 지, 상.”
“없어, 졸업장.”
김김밥이 쏘아붙였다.
“버렸냐?”
민자영이 고개를 갸웃댔다.
“그럼 두 번째도 실수였네. 세 번째도 실수였어?”
반시우가 묻자 김김밥은 한숨을 내쉬었다.
“글쎄. 아마 민자영 손이 미끄러져서 그런 거였지.”
민자영은 머쓱한 얼굴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얘가 전부터 입버릇처럼 얘기했었거든. 풍선껌에 대해서 알게 된 순간, 벌써 어떻게 쓸지 다 정해놨다고. 세 번째는 소개팅할 때, 네 번째는 취직할 때, 마지막은 보험용.”
“그게 무슨 말이야?”
반시우가 웃음이 반쯤 섞인 소리를 냈다.
“너도 알겠지만, 가끔 이름 갖고 이상한 소리하는 놈들이 있잖아. 우리 김김밥이도 몇 번 당했었거든.”
민자영이 김김밥의 어깨에 손을 감싸며 말했다.
“비열한 새끼들, 그냥 솔직하게 얘기할 것이지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로 거절하고 알바 떨어뜨리고. 암튼 세 번째 타깃을 누구로 할지 못 정하고 엄청 고민하길래, 내가 도움을 좀 준 거지.”
“그렇게 말하면 네가 엄청 선심 쓴 것 같은데, 그냥 네 개인적인 복수에 나 이용한 거잖아.”
김김밥이 투덜댔다.
“왜, 아무 죄도 없는 피해자 만드는 것보다야 낫지?”
민자영이 억울하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 번째는 한규선이라고, 맨날 갔잖은 핑계대고 팀플 빼먹는 재수없는 애가 있었는데, 우연히 밤새 술 처먹고 정신 못 차리면서 수업에 왔길래 내가 술 냄새 제거에 최고라고 슬쩍 껌 하나를 줬지.”
뒷이야기는 반시우도 모르지 않았다. 반시우는 그때 그 불쌍한 피해자들 중에 민자영도 있었구나, 그제야 알게 되었다.
“뭐, 끝은 아름답다고 보긴 어려웠지만. 나름 성공적인 복수였어, 그치?”
민자영의 말에 김김밥은 민자영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그러니까 나 말고 네, 복수라고, 너.”
“그럼 세 번째는 소개팅, 네 번째는 취직. 다섯 번째는? 마지막은 뭘로 쓸 거야?”
반시우의 질문에 김김밥은 고개를 내저었다.
“안 쓸 거야, 마지막 껌은.”
“안 쓴다고? 왜?”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갔다. 다행히 다들 신경 쓰기에는 너무 취해있었다.
“일종의 보험이랄까.”
김김밥이 피식 웃었다.
“살면서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다는 희망같은 거. 그 정도는 있어야 살 맛이 날 것 같아.”
“야아, 그냥 장렬하게 끝내고 잊어버려!”
민자영이 두 팔을 쫙 펴고 소리쳤다.
“뭐 어떠냐, 김김밥이! 김, 김, 밥! 좋잖아!”
민자영이 움직이면서 테이블 위에 놓인 양철통이 거세게 흔들렸다. 무심코 통을 집어 들었을 때, 반시우는 김김밥과 눈이 마주쳤다.
“너도 해보고 싶어?”
김김밥이 불쑥 물었다. 반시우는 속을 들킨 것 같아 당황했다.
“뭐, 뭐?”
“난 딱히 행운이라고 생각 안 해.”
김김밥이 덤덤하게 말했다.
반시우는 그 자리에 앉은 자신이, 김김밥의 눈에는 빈센트 반 고흐처럼 보일까 생각했다. 그건 세상의 그 어떤 화폭보다 근사한 장면이었다.
“껌은 내 소원이 아니라, 풍선을 분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거야. 이름을 뺏긴 쪽이 원하는 걸 하나 가져가거든.”
반시우는 김김밥이 자신에게 풍선껌을 뺏기고 싶지 않다고 얘기하는 건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래도 원할 때 원하는 이름으로 평범하게 살 수 있잖아.”
반시우가 애써 말했다.
“내가 빌리는 건 고작 며칠이잖아. 그게 더 거지같아.”
김김밥은 테이블에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풍선껌 같은 거, 애초에 주지나 말지. 그럼 그냥 쭉 불행했을 텐데.”
김김밥은 끝내 풍선껌을 건네주었고, 행복을 맛보게 해주었다.
반시우는 화면 속 양철통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보험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원래 보험은 일어나지도 않을 불행을 걱정하는 멍청이들이나 드는 거지. 아니, 그냥 사고를 내면 될 것이었다. 그럼 보험이 필요할 테니까.
클릭을 몇 번 하자 화면에 어지럽게 정리되지 않은 파일이 떴다. 있어야 하는데. 반드시 있어야 해. 미친 사람처럼 스크롤을 내려댔다.
찾았다.
〈비상연락망〉.
원하는 이름을 찾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번호를 입력하고 보니까 꽤 미친놈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젠 돈보다도 더 큰 무언가가, 사명감 같은 게, 나는 여기 이 구멍 아래에 머무를 사람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몇 번의 자극이면 될 것이었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은 그저 목소리가 클 뿐이다. 이것저것 잔뜩 쏟아내어 두면 사람들은 알아서 원하는 걸 골라갈 테다.
그저 김김밥이 알기만 하면 되었다.
네 이름이 얼마나 쪽팔리는 건지. 얼마나 얼른 바꿔야 하는 건지.
반시우는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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